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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한우마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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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1 14:56:29 조회 : 392         
  부석사 봉황선원 이름 : 관광영주  

부석사 봉황선원

아마도 우리나라 사찰 중에 예술가들의 극찬을 가장 많이 받은 사찰을 꼽으라면 영주 부석사가 맨 앞자리에 설 것이다. 그 극찬은 장르를 불문하고 터져 나오는 것이어서 감히 끼여들 자리가 없을 정도이다.

화가는 화가대로, 사진가는 사진가대로, 건축가는 건축가대로 부석사 앞에서는 어쩔 줄 몰라 한다. 오죽했으면 천하의 김삿갓도 안양루에 올라 물결처럼 펼쳐진 연봉들을 내려다보며 “우주 간에 내 한 몸이 오리마냥 헤엄친다”고 장탄식을 내뱉었을까.

내가 부석사에서 감동받는 것은 풍경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공들여 이 아름다운 풍광을 지켜왔을 이름 모를 스님들의 밝은 눈과 마음씀씀이다.

절에서 살림을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은 쉽게 수긍이 가는 얘기지만, 절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 효용성, 실용성에의 유혹을 쉽게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부석사의 공간배치는 살림을 위한 효용성을 앞세운 배치가 아니라, 화엄정신을 공간 속에 녹여낸 하나의 거대한 관념적 구도 속에 이루어졌다. 당연히 배치를 바꾸고 싶은 유혹이 있었을 터인데, 이렇게 잘 보존해 주었으니 어찌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 아니겠는가.

영주일대의 가을은 무엇보다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에서 익고 있었다. 부석사로 가는 길은 내내 사과의 길이었다. 이 사과나무 천지에 사과꽃이 피면 얼마나 예쁠까, 사과가 다 떨어진 겨울 사과나무 가지들 위에 눈이 쌓이면 또한 얼마나 장관일까 등등을 상상하자 좁은 국도가 전혀 지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부석사를 오르는 길도 양 옆으로는 사과밭이었다. 사과는 밭마다 그 색깔이 달랐고, 같은 밭의 나무들마다도 그 색깔이 달랐다. 한 나무에 매달린 사과들조차도 그 색깔이 각각 달랐다. 사과는 하나이면서 전체였고, 전체이면서 하나였다. 사과밭도 하나의 화엄만다라였던 것이다. 화엄(華嚴)이란, 이름 없는 꽃을 포함한 수많은 종류의 꽃으로 법계를 아름답게 장식한다는 뜻이 아니던가.

부석사는 다른 고찰들과 달리 창건주와 창건연대가 명확하다. 신라 문무왕 16년(676) 왕명에 의해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 의상은 중국에서 지엄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화엄학의 정수를 체득하고 돌아와 낙산사를 창건한 뒤 자신의 화엄종지를 펼 수 있는 곳을 찾아 산천을 두루 찾아다니다가 “고구려의 먼지나 백제의 바람이 미치지 못하고, 말이나 소도 접근할 수 없는 곳”이 이곳임을 발견하고 부석사를 창건했다. 화엄종찰(華嚴宗刹) 부석사의 출발이었다.

부석사는 초기 선종을 개척한 선각자들이 수학한 곳으로도 명성이 높다. 동리산문의 개산조인 혜철스님이 이곳에서 출가해 ‘화엄경’을 배웠으며, 성주산문의 개산조인 무염스님도 여기서 ‘화엄경’을 배웠다. 이들이 당대의 정신적 기반이었던 화엄사상을 이곳 부석사에서 체득한 뒤, 당시로서는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사상이었던 선종을 도입했다는 사실은 화엄사상과 선의 요체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차원에서 서로의 골수를 이어받고 있음을 입증해준다.

절이 자리잡고 있는 봉황산에서 이름을 딴 봉황선원(鳳凰禪院)이 현재의 위치에 둥지를 튼 것은 2000년에 들어서이다. 그러나 선원의 역사는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시대에서 선원이 있었다는 얘기가 전하며, 조선시대에는 사명대사가 경내 취현암에서 수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취현암은 조사전 옆에 복원되어있는데, 이곳에서 1997년부터 수좌들의 본격적인 정진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12평의 좁은 공간에 8명이 모여 참선을 했다.

선원이 신축된 것은 고운사 주지로 재임할 당시 고금당선원을 개원하고, 백일동안 하루 18시간 용맹정진하는 가풍을 조성하였던 근일스님의 원력에 의해서이다. 1992년 부석사 주지로 부임한 스님은 현재의 사격을 확고하게 다지는 것은 물론 봉황선원을 신축해 선풍을 일으키는 데 진력해왔다.

봉황선원은 경내의 지장전 뒤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야 나타난다. 경내에서는 볼 수도, 쉽게 찾을 수도 없다. 선원은 부석사의 공간배치를 전혀 훼손함이 없는 완전히 별도의 공간. 선원 마당에 올라서니 경내에서 보던 절경과는 또 다른 느낌의 절경이 눈앞에 확 펼쳐졌다.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보이는 산들이 마치 새들이 날개를 펼치며 내려앉는 듯한 포근한 장중함을 보여준다면, 선원에서 내려다보이는 산들은 날개를 쫙 펼치고 금세 날아오를 듯한 긴장감 서린 장중함을 연출하고 있었다.

한국 불교의 오메가요 알파인 화엄사상과 선사상은 천년고찰 부석사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동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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